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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알기

고전학파 이전 경제사상: 중세시대 경제관, 중상주의 그리고 중농주의

by 지(知)지(智)함(咸) 2022.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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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사상은 지속적으로 변화 발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변화 발전해 왔을까요? 고전학파 이전 경제사상인 중세시대 경제관부터, 중상주의와 중농주의에 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중세시대 경제관

1953년 "The Worldly Philosophers"의 저자로 경제학자 해일 브로너(R. Heilbroner)는 중세를 지탱하는 3가지 힘에 관해 서술했습니다. 그 힘은 종교(금욕), 권력(채찍), 그리고 관습(전통)입니다. 중세시대에도 시장은 존재했으나 단지 공간적인 의미에 지나지 않을 뿐 시장기구(market mechanism)는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는 이기심에 의한 경쟁, 이윤의 개념도 도입되지 않은 시점입니다.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또 제조업자와 상인들의 조합인 길드(guild)가 있어서 새로운 제품의 출시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단추 길드는 오직 금속으로 만든 단추만을 생산하며 다른 제품의 생산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금속이 아닌 천으로 단추를 만들어 시장에서 판매가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단추 길드의 고발로 처벌을 받았고, 천으로 만든 단추 착용돼 금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볼 때 시장기구가 아닌 종교와 권력, 관심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2. 중상주의(Mercantilism)

중상주의는 상업을 중시한 15C-18C의 경제사상을 말합니다. 유럽에서 풍미했던 주도적 경제사상으로 금, 은 보석의 양이 국부로 인식했습니다. 중세시대는 금본위 제도 시대이므로 국부의 증진을 위해 금은의 확보가 중요했습니다. 외국과의 무역을 통해 획득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었습니다. 중상주의를 통해 부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수출을 많이 하는 대신 수입을 적게 하여 무역흑자를 내는 것입니다. 무역대금은 금은으로 돌려받아 국부를 중진 시키는 방식을 활용했습니다. 중상주의 하에서는 국력 증대를 위해 상업을 기본적 산업으로 정부의 지원과 통제가 요구된다고 보았습니다. 중상주의에서 무역정책은 수입을 억제하는 보호무역주의를 채택합니다. 해외 수요를 촉진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체제입니다. 상업만을 강조하였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즉 국제무역에서 상호 간 이익이 되는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여 보호주의를 강조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즉 인식 저변에는 영합 게임(zero sum game) 인식이 있었습니다. 영합 게임은 합하면 제로(0)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의미는 한쪽이 이득을 보면 다른 한쪽은 상대방은 손해를 본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국가의 부와 개인의 부를 명확하게 분리해서 고려하지 못했는데 금은의 양을 국부로 파악했습니다. 하지만 중상주의는 공급(생산)뿐만 아니라 수요(해외시장에서의 수요 증대)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한 최초의 경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수요를 중시한 중상주의는 이후 미국의 대공황 시절에 케인즈(John M. Keynes)의 정부 개입주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전략으로도 중상주의는 활용되었습니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발전전략도 해외무역을 통한 성장이라는 점에서 중상주의와 맥을 같이 합니다. 

3. 중농주의(Physiocracy)

중농주의는 18C중엽 프랑스를 중심으로 자연의 통치가라는 의미로 농업을 중시한 경제사상입니다. 케네(F. Quesnay, 1694-1774)에 의해 제창되었습니다. 케네는 프랑스 루이 15세 즉위 시절 궁정 의사였습니다. 중농주의는 자유방임을 주장했습니다. 즉 "인간의 경제 사회에도 자연과 같은 질서가 있다. 정부는 경제에 간섭하지 말고 자연질서에 순응하듯 자유롭게 두라"고 했습니다. 1758년 케네는 인류 최초의 경제학 저서 경제표(le Tableu Eonomique)를 출간했습니다. 농업노동만이 가치를 창출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중상주의에 반대하여 중농주의는 정부 간섭을 배제하고 자유방임을 주장했으며, 상업(유통)이 아닌 생산(농업)을 주장했습니다. 중농주의는 경제문제에 있어 자유를 중시하고 자유주의 경제사상을 최초로 제기하였습니다. 이는 이후 아담 스미스의 고전학파 사상에 공헌했습니다. 또한 경제 순환과정에서 가치 창출을 규명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는 훗날 고전학파가 제시한 노동 가치설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중농주의가 상업보다 농업을 중시했다는 점은 보다 발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농업만을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에 기여한 것으로 인식했다는 것은 한계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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